■ 불교이야기 ■/육조단경

육조단경-2

서원365 2007. 3. 10. 13:42
 

공덕과 정토를 밝히다(釋功德淨土)

○韋刺使(위자사)가 물었다.

달마대사가 양무제를 교화하실 때 무제가 묻기를

“짐이 일생 동안 절을 짓고 스님을 공양하고 널리 보시하고 齋(재)를 베풀었는데 어떤 공덕이 있는가?”라고 하니 달마대사가

“실로 공덕이 없다.” 하였다 하는데 그 이치가 무엇인가?

대사(6조)가 말했다.

실로 공덕이 없다.… 절을 짓고 공양을 올리고 보시를 하며 재를 베푸니 이것은 복을 구하는 것이라 복이 공덕이 될 수는 없다. 공덕은 법신 중에 있는 것이고 복을 닦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功德 在法身中 不在修福:공덕 재법신중 부재수복)

성품을 보는 것이 공이요 평등은 이것이 덕이니 생각생각 막힘이 없어 항상 본성의 眞實妙用(진실묘용)을 보는 것이 공덕이 되는 것이다. 안으로 마음이 겸양하여 낮추는 이것이 공이요 밖으로 예를 행하면 이것이 덕이며, 자성이 만법을 건립하는 것이 공이요, 心體(심체)가 생각을 여읜 것이 덕이며 자성을 여의지 않는 것이 공이요 응용에 물들지 않는 것이 덕이니 만약 공덕 법신을 찾으려면 다만 이에 의하여 지어야 이것이 공덕이다.…

생각 생각이 끊임이 없는 것 이것이 공이요 마음을 평등히 하고 곧게 쓰는 것이 덕이며 스스로 성품을 닦는 것이 공이요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덕이다.

 

* 절을 짓고 탑을 만들며 보시하는 것은 선행이다. 그렇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법에 접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받을 일임에 분명하나 그것이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은 아니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스스로 실상을 보도록 해야 한다. 비유하면 학교를 짓는다고 해서 학교를 지은 사람이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학교를 지어 많은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많은 사람이 공부하게 되었다고 해서 학교를 지은 사람이 덩달아 공부를 잘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공덕이 없다고 한 것이다.

 

○ 공(위자사)가 물었다.

아미타불을 생각하여 서방극락에 태어나기를 원하고 있는데 저곳에 가서 태어날 수 있는가?

대사가 말하였다.

어리석은 범부들은 자성을 밝히지 못하여 자기 몸 가운데 정토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혹은 동쪽 나라를 원하고 혹은 서쪽 나라를 원하나 깨달은 자는 있는 곳마다 다 한 가지이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머무는 곳마다 항상 안락하다.”고 하셨다.‥‥

사군아 다만 십선만 행한다면 어찌 반드시 서방에 왕생하기를 원할 것이며 만약 십악심을 끊지 않으면 비록 염불한들 어느 부처님께서 와서 맞아 주실 것인가! 만약 無生(무생)인 頓法(돈법)을 깨치면 서방을 찰나 사이에 볼 것이나 깨치지 못하고 염불만 하여 가서 나기를 원한다면  길이 멀거니 어떻게 도달할 수 있으랴.

 

○ 위공이 또 물었다.

在家人(재가인)은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대사의 게송

心平何勞持戒(심평하로지계) -- 마음이 평등하니 어찌 힘써 戒(계) 가지며

行直何用修禪(행직하용수선) -- 행실이 정직하니 禪(선) 닦아 무엇하랴

恩則親養父母(은즉친양부모) -- 은혜 알아 부모 봉양 잊지 않고

義則上下相憐(의즉상하상련) -- 의리 지켜 위아래 서로 돕고 사랑하며

讓則尊卑和睦(양즉존비화목) -- 禮讓(예양) 알아 높고 낮음 서로 서로 화목하고

忍則衆惡無喧(인즉중악무훤) -- 인욕한 즉 나쁜 일들 걸릴 것이 하나 없네


若能鑽木出火(약능찬목출화) -- 망약 능히 나무를 비벼 불을 내듯 할지면

淤泥定生紅蓮(어니정생홍련) -- 진흙 속에 붉은 연꽃 어김 없이 피어나리

苦口的是良藥(고구적시양약) -- 입에 쓰면 몸에는 반드시 양약이오

逆耳必是忠言(역이필시충언) -- 귀에 거슬리는 말은 마음에 충인이라

改過必生智慧(개과필생지혜) -- 허물을 고칠지면 지혜가 살아나고

護短心內非賢(호단심내비현) -- 허물을 두호하면 안은 어질지 않네


日用常行饒益(일용상행요익) -- 일용 생활 어느 때나 착한 행을 앞세우라

成道非由施錢(성도비출시전) -- 道 이룸은 재물 보시하는 데에 있지 않다.

菩提只向心覓(보리지향심멱) -- 보리도는 한결같이 마음 향해 찾는 것을

何勞向外求玄(하로향외구현) -- 어찌 힘써 밖을 향해 玄을 향해 헤맬손가


聽說依此修行(청설의차수행) -- 이 말 듣고 이를 따라 이 수행을 닦을지면

天堂只在目前(천당지재목전) -- 천당 훤출하게 눈앞에 드러나리


정과 혜는 일체임(定慧一體)

○ 대사(6조)가 대중에게 일렀다.

‥‥定慧(정혜)는 일체요 둘이 아니니 정은 이것이 혜의 體(체)요, 혜는 이것이 정의 用(용)이다.(定慧一體 不是二 定是慧體 慧是定用 :정혜일체 부시이 정시혜체 혜시정용)

혜에 즉할 때 정이 혜에 있고 정에 즉할 때 혜가 정에 있으니 만약 이 도리를 알면 정혜를 함께 배우게 될 것이다. 대게 도를 배우는 이들이 정을 먼저 하고 다음에 혜를 일으킽다거나 혜를 먼저 하고 다음에 정을 일으킨다거나 하여 정과 혜가 다르다고 말하지 마라.

 

一行三昧(일행삼매)라 하는 것은 어느 곳에서나 行住坐臥(행주좌와)에 항상 한결같은 곧은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一行三昧 一切處 行住坐臥 常行一直心(일행삼매 일체처 행주좌와 상행일직심) ≪정명경≫에 말하기를 ‘곧은 마음 이것이 道場(도량)이며 곧은 마음이 淨土(정토)다’ 하였으니 마음으로는 諂曲(첨곡)하면서 입으로는 다만 곧은 것을 말하며, 입으로는 一行三昧(일행삼매)를 말하나 直心(직심)은 행하지 않는 일이 없어야 한다.‥‥

미혹한 사람은 法相(법상)에 착하여 일행삼매에 국집하면서 곧 말하기를 ‘앉아 동함이 없고 망령되이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즉 一行三昧(일행삼매)라’하니 이와 같은 견해를 갖는 자는 곧 무정물과 같으니 이는 도리어 도를 장애하는 인연이 된다.

 

○ 나의 이 법문은 위로부터 내려오면서 먼저 無念(무념)을 세워서 宗(종)을 삼고, 無相(무상)으로 體(체)를 삼으며 無住(무주)로써 本(본)을 삼는다. 무상이라 함은 相(상)에서 상을 여읨이요, 무념이라 함은 생각에서 생각이 없음이요, 무주라함은 사람의 본성이 세간의 선이나 악이나 밉거나 곱거나 원수거나 천하거나 모질고 거친 말을 하거나 속이고 다툼을 당하거나 할 때 그 모두를 空(공)으로 돌려버리고 상대하여 해칠 생각을 하지 않고 생각 생각 중에 앞 경계를 생각하지 않음이다.

 

○ 無라 함은 두 가지 相이 없는 것이니 모든 망상이 없는 것이요, 念이라고 함은 진여본성을 생각함이니 진여는 곧 생각의 본체요, 생각은 곧 진여의 작용이다. 眞如自性이 생각을 일으킴이요 눈이나 귀,코,혀가 능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니 진여에 성품이 있으므로 생각이 일어날 수 있거니와 만약 진여가 없다면 눈이나 귀나 빛깔이나 소리가 당장에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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