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이야기 ■/육조단경

육조단경-3

서원365 2007. 3. 18. 07:10
 

좌선법을 가르치다(敎授坐禪)

○어떠한 것을 좌선이라고 하는가? 이법문 중에는 걸림도 없고 막힘도 없으니 밖으로 일체 선악경계를 당하여도 심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坐가 되며 안으로 자성이 원래 돔함이 없음 보는 것이 禪이 된다.(此法門中 無障無碍 外於一切善惡境界 心念不起 名爲坐 內見自性不動 名爲善 : 차법문중 무장무애 외어일체선악경계 심념불기 명위좌 내견자성부동 명위선)

* 좌선이라고 하면 우선 앉는다는 상을 짓기 쉽다. 그러나 고요히 앉는 것만이 좌선이라고 생각하면 이는 좌선에 대한 상을 짓는 것이다. 좌선은 진여를 보려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앉지 않아도 自性을 볼 수 있다면 그러한 행위가 모두 좌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앉아서 하는 좌선이 필요없다는 말은 아니다. 좌선은 가장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방법이다.

* 좌란 단지 앉아 있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때문에 좌선의 형태가 부동심을 얻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좌선 그 자체가 해탈을 나타내는 부동심이라고 하는 가르침도 있습니다.- 정화 역 『법성게』

 

○ 어떠한 것을 선정이라고 하는가? 밖으로 相을 여의면 禪이 되고 안으로 어지럽지 않으면 定이 되니, 만약 밖으로 상에 착하면 곧 안으로 마음이 어지럽고, 만약 밖으로 상을 여의면 곧 마음이 어지럽지 않다.

 

○일체 생각 생각 중에 스스로 본성의 청정을 보아 스스로 닦고 스스로 행하여 스스로 불도를 이루게 하라. 그러나 이 법문의 좌선은 원래 마음에 著(착)하지 않으며 또한 깨끗함에도 착하지 않으며 또한 동하지 않는 것도 아니하다. 만약 마음에 착한다면 마음은 원래 이것이 망령된 것이니 마음이 幻(환)과 같은 것임을 아는 고로 집착하지 않는다. 만약 깨끗한 것에 착한다면 원래 사람의 성품은 청정하나 다만 망념으로 말미암아 진여가 덮힌 것이니 망상만 없애면 성품은 스스로 청정하거늘 다시 마음을 일으켜 청정에 착한다면 이것은 定妄(정망)을 일으키는 것이다.

* 자성이 청정하다 함은 더럽지 않고 깨끗하다는 말이 아니다. 자성은 깨끗함도 더러움도 없다. 다만 생각 생각이 일어남에 따라 깨끗할 수도 있고 더러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깨끗하다 더럽다 하는 것도 역시 생각이 지어낸 것일 뿐이다.


오분향과 참회법을 전하다(傳香懺悔)

○ 五分法身香(오분법신향)

1. 戒香(계향) - 자기 마음 가운데에 그름(非 )이 없고 악함이 없고 질투가 없고 탐냄과 성냄이 없으며 또한 빼앗고 해치는 마음이 없는 것(戒香 卽自心中 無非無惡 無嫉妬 無貪瞋 無劫害 : 계향 즉자심중 무비무악 무질투 무탐진 무겁해)

2. 定香(정향) - 모든 선악 경계나 형상을 보고 자기 마음이 어지럽지 않는 것(定香 卽觀諸善惡境相 自心不亂 : 정향 즉관제선악경상 자심불란)

3. 慧香(혜향) - 자심에 걸림이 없어 항상 지혜로써 자성을 비춰 보아 모든 악을 짓지 않고 비록 많은 선을 행하더라도 마음에 집착하지 않으며 위를 공경하고 아래를 보살피어 외롭고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自心無礙  常以智慧 觀照自性 不造諸惡 雖修衆善 心不執着 敬上念下 矜恤孤貧 : 자심무애  상이지혜 관조자성 부조제악 수수중선 심부집착 경상념하 긍휼고빈)

4. 解脫香(해탈향) - 마음이 반연하는 바가 없이 선도 생각하지 않으며 악도 생각하지 않아서 자재무애한 것(解脫香 卽自心 無所攀緣 不思善不思惡 自在無碍 : 해탈향 즉자심 무소반연 불사선불사악 자재무애)

*반연 : 마음이 대상에 의지하여 작용함

5. 解脫知見香(해탈지견향) - 자심에 이미 선악에 반연하는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空(공)에 잠겨 고요를 지켜서는 아니되니 모름지기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야 하며 자기 본심을 알아서 모든 불법 이치에 통달하여 빛을 和하여 사물을 접하되 我도 없고 人도 없이 바로 菩提(보리)에 이르러 참 성품에 변합이 없는 것(自心旣無所攀緣善惡 不可浸空守寂 卽須廣學多聞 識自本心 達諸佛理 和光接物 無我無人 直至菩提眞性不易: 자심기무소반연선악 불가침공수적 즉수광학다문 식자본심 달제불리 화광접물 무아무인 직지보리진성불역)

 

○ 無相懺悔(무상참회)

제자들이 前念(전념) 今念(금념) 後念(후념)의 염념중에 어리석고 미혹한 데 빠지지 않아지오며, 이제까지 미혹하였던 죄를 모두 참회하오니 바라옵건데 일시에 소멸되고  다시는 영 일어나지 않아지이다.

제자들이 前念(전념) 今念(금념) 後念(후념)의 염념중에 교만하고 진실하지 못한 데 물들지 않아지오며 이제까지 지은 바 악업인 교만하고 속이고 하던 모든 죄를 다 참회하오니 바라옵건데 일시에 소멸되고  다시는 영 일어나지 않아지이다.

제자들이 前念(전념) 今念(금념) 後念(후념)의 염념중에 질투심에 물들지 않아지오며 이제까지 지은 악업인 질투 등 죄를 모두 참회하오니 바라옵건데 일시에 소멸되고  다시는 영 일어나지 않아지이다.

懺(참)이라 함은 이제까지의 지은 허물을 뉘우치는 것이니 이제까지의 지은 악업인 어리석고 미혹하고 교만하고 속이고 질투하는 등 죄를 다 참회하여 영영 다시는 일으키지 않는 것이 참이며

悔(회)라 함은 미래의 허물을 뉘우침이니 지금부터 이후의 짓는 바 악업인 어리석고 미혹하고 교만하고 속이고 질투하는 등 죄를 미리 깨닫고 모두 다 영영 끊고 다시는 짓지 않는 것, 이것이 회이다.


○ 四弘誓願(사홍서원)

自心衆生(자심중생)이 가없으나 맹세코 제도하리라. 자심번뇌가 가없으나 반드시 끊으리라. 자성법문이 한없으나 맹세코 배우리라. 자성불도가 위없으나 맹세코 이루리다.

중생이라함은 마음 가운데 중생이니 이른 바 저 삿되고 미혹한 마음, 속이고 망령된 마음, 착하지 않은 마음, 질투심 모질고 독한 마음 등 이러한 마음이 모두 중생이니 모름지기 자성으로 스스로 제도하는 것 이것이 참 제도이다.

자성을 스스로 제도한다함은 마음 속의 邪見(사견) 煩惱(번뇌) 愚癡(우치) 등 중생을 正見(정견)으로 제도하는 것이다.


○ 無相三歸依戒(무상삼귀의계)

  선지식에게 권하노니 自性三寶(자성삼보)에 귀의하라. 불이라힘은 깨달음이요 법은 바름이요 승은 청정을 말함이니 자기 마음이 깨달음에 귀의하여 삿되고 미혹한 것 나지 않으며 욕심이 적고 족함을 알아 능히 財色(재색)을 여읨을 二足尊(이족존)이라하는 것이요 자기 마음이 바른 것에 귀의하여 생각생각 가운데 사견이 없으므로 곧 아상 인상으로 스스로를 높이 떠받치거나 貪愛(탐애)와 집착이 없는 것, 이것을 離欲尊(이욕존)이라 하는 것이며, 자기 마음이 청정에 귀의하여 일체 진로와 애욕 경계에 자성이 전혀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은 것을 衆中尊(중중존)이라 한다.

자기 色身(색신)의 청정법신불에 귀의하오며, 작기 색신의 천백억화신불게 귀의하오며, 자기 색신의 원만보신불에 귀의합니다.

淸淨法身(청정법신) - 세간 사람의 성품이 본래 청정하여 만법이 자성으로부터 남이라, 만약 일체 악한 일을 생각하고 헤아리면 곧한 악한 행이 나오고 일체 착한 일을 생각하고 헤아리면 곧 착한 행이 나오나니 이와 같이 모든 법이 자성 가운데에 있는 것이 마치 저 하늘이 항상 맑고 해와 달이 항상 밝으나 구름에 덮이면 위 하늘은 밝고 아래는 어둡다가도 문득 바람이 불어 구름이 흩어지면 위아래 함께 밝아 만상이 모두 나타나나니 세간 사람의 성품도 이와 같아서 항상 들떠 있는 것이 마치 저 하늘의 구름과 같다.

千百億化身(천백억화신) - 만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성품이 본래 허공과 같으나 한 생각 헤아리면 이것이 변화이다. 악한 일을 생각하면 화하여 지옥이 되고 착한 일을 생각하면 화하여 천당이 되고 毒害心(독해심)은 화하여 용이나 뱀이 되고 자비는 화하여 보살이 되고 지혜는 화하여 높은 경계가 되며 우치는 화하여 낮은 세계가 되니 자성의 변화가 심히 많다.

圓滿報身(원만보신) - 비유하면 한 등불이 능히 천년 동안의 어둠을 밝히듯이 한 지혜가 능히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앤다. 지나간 일은 생각하지 마라. 이미 지났으므로 가히 얻을 수 없다. 항상 뒤를 생각하라. 생각 생각 두렷이 밝게 하여 스스로 본성을 보라. 선과 악이 비록 다르나 본성은 둘이 없으니 둘이 없는 성품 이것이 실다운 성품이다. 이 실다운 송품 가운데서 선악에 물들지 않는 이것이 원만보신불이다.

*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마라함은 지나간 일에 머무르지마라는 것이다. 지나간 일을 거울 삼아 앞으로의 일을 설계함은 너무나 당연하고 합리적이다. 또 지나간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함은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도 없이 이미 지난 일에 얽매이고 잊지 못하는 것은 번뇌망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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