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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무원 이야기

서원365 2009. 8. 13. 09:21

이 이야기는 들은 지 참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명과 연도를 분명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9급 공무원의 아내가 있었다. 옛날에는 공무원 직급이 9급부터 시작되었다. 이름을 잘 몰라 그냥 정혜라고 해둔다.

 

 정혜는 요즘 꿈에 부풀어 있다. 잘 하면 내년쯤에는 작지만 아파트 하나는 장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혜는 결혼 5년차이다. 그 동안 알뜰하게 살림을 살아 제법 돈을 모았다. 그런데다 남편 민우는 매달 10%씩 저축을 꼬박꼬박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민우가 모은 돈과 자기가 모은 돈, 그리고 좀 대출을 받으면 내 집 장만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혜가 민우와 결혼하고 몇 달 뒤 월급봉투를 자세히 보니 돈이 10%가 모자랐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월급 봉투를 자세히 살펴보니 매달 어김없이 정확하게 10%씩 모자랐던 같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퇴근하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저축을 하는 것이 분명한 것 같았다. 왜냐하면 민우는 술담배를 전혀하지 않았고, 퇴근 시간에 맞추어 늘 귀가했으며, 그렇다고 부모님이나 가까운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우는 전남 어느 섬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하여 고등학교에는 갈 엄두를 못내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그러는 중에 홀어머니도 죽고 고아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다행히 공무원 시험에는 합격을 해서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 - 이것이 정혜가 남편 민우에 대해서 아는 전부였다.

 

 정혜는 민우가 알뜰한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자기 자신도 아주 알뜰하게 살림을 살았다. 그리고 결혼한 지 5년이 된 것이다.

 

 정혜는 콧노래를 부르며 설겆이를 하고 있다. 옆에 켜둔 라디오에서는 미담 사례가 소개되고 있다.

 

 "오늘은 듣기만 해도 참 흐뭇한 미담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전라남도 어떤 섬에서 태어난 청년이 있습니다. 지금은 저희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무원을 하고 있다는군요."

 '우리 그이와 고향이 같네. 그이도 공무원인데.'

 

 "그는 참 가난하게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고 하는군요. 그는 공부를 많이 못한 것이 늘 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기처럼 가난해서 공부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무원이 된 뒤,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후배들을 돕기 위해 매달 월급의 10%씩을 떼어 고향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알려주어 본인이 한사코 사양하는데도 이렇게 소개합니다."

 '세상에는 참 훌륭한 사람도 많구나.' 

 

 그러는 동안에 정혜는 설겆이를 끝냈다. 흐뭇한 이야기를 들어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특히 남편과 고향이 같다는 것에 대해 괜히 자부심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런데 방청소를 하던 정혜는 갑자기 걸레질을 멈추었다.

 '아니,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잖아? 민우씨 이야기인 것 같은데. 그 섬에 그 나이에 똑 같은 사람이 한 사람 더 있다면 민우씨가 분명 이야기했을 텐데. 그이 이야기가 분명해.'

 

 정혜는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과 함께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 걸레를 자기도 모르게 던져버리고 어쩔 줄 몰라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동사무소를 달려가고 싶었지만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 점심 때가 될 때까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파트가 산산히 부셔지고 있었다. 민우가 잘도 자기를 속였다고 생각했다.

 

 오후가 되어서야 조금 마음이 안정되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를 내봤자 어쩌겠는가 앞으로 못하게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좀더 지나자 차츰 자기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히 참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내가 손해라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내 생각이 달라질 수있는가? 그이는 나쁜 데 사용한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들도 술담배나 노는 데 그 정도는 쓰지 않나? 그런데 그이는 그런 것 하지 않고 좋은 데 썼는데....'

 

 참 속좁은 자신을 발견했다.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남편에게 화를 낸 것이 참 미안했다. 그리고 6시 반이 되자 어김없이 민우는 퇴근을 했다. 그때에는 이미 정혜의 마음은 완전히 풀어져 있었다. 남편이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웠다.

 "여보, 미안해요, 라디오를 통해 다 들었어요. 당신이 지금까지 해 온 일. 나는 괜히 나만 손해라는 생각 때문에 앞에 있지도 않은 당신에게 화를 냈어요. 앞으로도 그 일을 계속하기를 바래요."

 그리고 그날 있었던 일과 자기가 느꼈던 기분을 이야기하였다.

 "사실, 내가 잘못했지. 결혼하자마자 당신에게 말했어야 했는데. 오랫동안 하던 일이다보니 그냥 당연하게 여겨져서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

 

 마음 먹기에 따라 사람은 천상과 지옥을 왔다갔다 합니다.